한 지역민이 꿈꾸는 '안티 서울공화국'

상경과 낙향

우리는 보통 서울에 갈 때 ‘서울 올라간다’고 얘기한다. 또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 갈 때는 ‘내려간다’고 얘기한다. 지리적으로 서울이 여타 지역보다 북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서울에서의 삶은 항상 지역의 삶보다 더 나은 것으로 여겨진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면 서울에서 살면 출세했다고 여기는 것 같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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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현재 수도권의 인구는 전체 인구의 49.5%를 차지한다

2006년 서울에 취직하기 전까지 난 전라북도 전주에서 살았다. 1994년 대학을 입학했을 때부터 2006년 8월 그곳을 떠나기 전까지 군대 시절을 제외하고는 10년 가까이 그곳에서 생활했다. 단골 음식점도 꽤 있었고, 아는 이들도 꽤 있었으며 길을 헤매는 일도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기도 했었고, 지역 신문사에 취직해 잠시 기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 시기, 대다수의 다른 대학 동기들은 서울에 취직을 해 전주를 떠났다.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만나는 그들은, 학교 다닐 때와는 참 많이도 달라져 있었다. 우선 외양부터 조금씩 달라졌고, ‘서울 사투리’를 많이 썼다.

그네들과 얘기하다보면 왠지 주눅이 들었다. 그들은 서울의 이름 모를 거리 이름을 들먹였고, 서로의 회사가 어디 있는지, 또 어디에 살고 있는지, 연봉은 어떻게 되는지, 이번에 새로 구입한 수트나 시계, 넥타이핀 등에 대해 얘기를 하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내가 보기에 출세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지역에 남아있는 내가 낙오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까닭이 뭐였는지는 지금도 확실히 모르겠다. 하지만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서울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서울에서의 삶은 낯설었고, 낯선 만큼 두려웠으며, 두려운 만큼 싫었다. 난 안온한 전주에서의 삶을 계속하고 싶었다. 그러나 2006년 난 서울에 ‘올라왔다’. 일자리를 찾아서 말이다.

서울에서 산 지 햇수로 4년이 되었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삶은 언제나 뭔가 아쉽고 싫었다.  서울에 올라와 생전 처음으로 만원버스를 탈 때부터 그랬다. 그래서인지 난 서울에 ‘올라왔을’ 때부터 전주로 ‘내려가는’ 걸 꿈꾸었다. 입버릇처럼 난 내려가고 싶다고 아내에게, 또 다른 이들에게도 말한다. 아내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2009년 현재 난 아직 서울에 있다. 밥벌이 때문이다.

서울공화국

나와 같이 밥벌이 때문에 서울에 올라온 이들, 많을 것이다. 내 주변만 봐도 그렇다. 각 지역마다 인구유출이 계속 이뤄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게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9년 현재 서울과 경기지역에 거주하는 인구가 대한민국 전체 인구 중 49.5%를 차지한다고 한다. 통계청은 지역별 인구 및 인구밀도 추세를 이렇게 분석한다.

● 인구
  - 2000년 이후 부산, 대구, 강원, 충북, 전북, 전남, 경북의 인구는 감소추세에 있음. 이는 해당지역의 출생과 사망차이에
    의한 자연증가보다 인구유출이 더 크기 때문
  - 2005년 수도권의 인구는 경기도가 10,612천명, 서울이 10,011천명, 인천이 2,578천명으로서 23,202천명이며 전국 인구
    의 48.2%를 차지.  2009년 수도권 인구는 24,128천명(경기(11,447천명), 서울(10,036천명), 인천(2,645천명))이며 전국
    인구의 49.5%를 차지하여 수도권으로의 인구집중이 심화되었음
  - 향후 서울인구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경기 인천지역의 인구증가로 수도권인구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됨


● 인구밀도
 - 00년 이후 부산, 대구, 전북, 전남의 인구밀도는 감소추세이며 대전, 울산, 경기의 인구밀도는 증가추세
 - 수도권으로의 지속적인 인구유입으로 수도권의 인구밀도는 연간 약 20명/㎢씩 증가
 - 09년 인구밀도는 서울(16,589명/㎢), 부산(4,532명/㎢) 순으로 가장 높고 강원(87명/㎢), 경북(137명/㎢) 순으로 가장 낮음


서울로 인구가 유입되는 사실은, 사실 새로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서울로 인구유출이 심화되고 있는 사실은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온 나라가 불황이라고 하지만, 지역은 그 전부터 불황 상태였다. 떠나는 사람은 떠나는 사람대로, 남는 사람은 남는 사람대로, 지역 주민들은 생계 문제 때문에 항상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이다. 참여정부 시절 지혁균형발전 정책이 제시됐으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부터는 그마저 흐지부지되고 있는 실정이다(세종시 문제를 보라). 그러나 그것보다 큰 문제는 마땅한 해법이 없다는 것일 게다. 모든 재화와 정보, 사람이 서울로만 향하는 한국사회의 기형적인 시스템을 해결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요원한 일인 것처럼 보인다.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라 칭해도 무방하다. 모든 재화와 인구, 대학이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 몰려있다. 사람들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또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 지역에서 마땅히 밥 벌어 먹고 살 방도가 없어서 서울로, 서울로 향한다. 한국전쟁 후부터 그랬고, 특히 산업화가 가속화된 박정희 정권 때 심화됐다. 가정부로, 잡부로, 공장 노동자로 살기 위해 사람들은 자기 고향을 등졌다. 고향에서 사는 것보다는 나았기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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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다 (사진:임상태)

만약 고향에서 먹고 살 수 있는 방편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죽은 자식 XX 만지기’이지만 아마 그랬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아마 지금처럼 지역과 서울간의 격차가 그리 크게 벌어지지도 않았을 테고, 각 지역에 마을단위로 존재하던 공동체도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몸은 지역에 살지만, 눈은 서울을 향해 있는 지역민들의 이중적인 삶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됐든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여전히 우리는 서울공화국에서 살고 있고, 이를 해결할 의지 없는 정권 하에서 살고 있다. 또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실현하지 못한 지역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 기형적인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어떻게 하면 지역민들이 더 이상 소외받지 않고 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나처럼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향하는 사람을 줄일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지역주민들의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원응호가 쓴 <검은 땅에서 꿈을 캐다> (이매진,2009)에 어렴풋한 해답이 있었다.

자립적 경제공동체

<검은 땅에서 꿈을 캐다>(이하 <검은 땅>)는 원응호라는 개인이 태백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기록이자, 폐광 이후 생계가 막막해지고 나락으로 치닫던 태백에 남아있는 주민들의 삶에 대한 기록이고, 그것을 바꿔보려는 사람들의 다양한 노력과 성과에 대한 기록이다.

<검은 땅에서 꿈을 캐다>는 지역사회를 살리기 위한 실현 가능한 방안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 있는 저작이지만, 내가 처음 주목했던 것은 지역에 이러한 다양한 움직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기록물’로서의 가치였다.

사실 우리는 지역에 대해 잘 모른다. 내 경우도 전주에 살 때 전주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무관심했다. 지역신문사 기자로 일하면서 지역사회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을 뿐이다.

지자체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지역에 있는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그것이 내 삶과는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몰랐다. 내가 붙박고 살아가고 있는 지역사회에 대해 난 무지했다. 그리고 기자 생활을 하면서 만난 지역민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지역사회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난 <검은 땅>의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먼저 인정했다. 지역에 희망이 없다고 섣불리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지역에 무관심한 이들에게, 지역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졌고, 이만큼의 성과를 이뤄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기록물로서 이 책은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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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강산푸르게푸르게총서20 <검은 땅에서 꿈을 캐다>

그 다음 내가 주목한 것은 원응호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자립적 경제공동체였다.

이 책은 처음에는 태백과 저자와의 인연, 광부로 살아온 세월, 진폐증을 알려나가기 위한 활동을 이야기하다가 지역신문사 창간부터 복지회에서의 활동, 시민주식회사의 창립, ‘폐광지역개발특별법’ 제정운동을 거쳐 자활사업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풀어놓는다.

지역사회에 천착한 저자의 왕성한 활동을 들여다보면 그 열정에 놀라게 된다. 그러나 그보다 놀라운 것은, 저자가 이런 활동을 해나가면서 지역사회를 살리기 위한 하나의 모델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립적 경제공동체다.

원응호는 막장에서 일하면서 광부의 산업재해 문제, 진폐증 문제가 개인이 책임져야 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사회적으로 논의조차 되지 않던 진폐증 문제를 알려나갔다. 또 복지회가 운영하는 노동상담소에서 일할 때 폐광 실직자들의 실상에 대해 깨닫고 난 뒤에는 이들을 위한 자활 사업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게 된다. 그렇게 마련한 것이 자활 센터였다.

원응호는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최대의 복지”란 생각으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태백자활센터를 만든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태백은 산촌 도시이고 인구도 많지 않다. 모든 것이 석탄 산업에 중심을 두고 흥망성쇠를 해온 도시였으나, 특별법이 제정된 뒤 석탄의 검은 때를 벗고 관광과 레저 스포츠 도시의 면모로 일신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러한 개발의 전망을 함께 나누기 어려운 빈곤층을 대상으로 ‘자활 사업을 통한 자립적 경제공동체 설립’이라는 비전으로 지역 개발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려고 했다. ‘작은 일자리 창출’로 단 1명이라도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아이템은 모두 개발하고 시민 자본을 비롯해 사회적 일자리 요소까지 자활 공동체나 사회적 기업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나가는 데 중점을 두었다. 또 각 공동체 또는 사회적 기업 중 선도 기업을 만들고 선도 기업을 중심으로 한 클러스터를 구축해 자체적으로 순환구조를 만들고 경제적 가치들이 자체적으로 선순환되도록 한다면 자립적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128,1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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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응호는 자립적 경제공동체 설립을 태백의 비전으로 제시한다

이런 목표로 그는 태백자활센터를 설립했다. 그리고 세 가지 사업 방향을 정했다.

첫째는 지역 특성을 살린 사업, 둘째는 사업 간의 클러스터 구축, 셋째는 사업의 소규모 다각화였다.

그 결과 자활센터는 지역특성을 살린 사업으로 숲 가꾸기 사업과 자활사업을 연계해 국유림 가꾸기 사업을 주로 하는 자활영림단을 설립 운영했다. 그리고 클러스터 구축으로 민유림 사업을 담당하는 (주)강원임업을 설립해 자활영림단과의 인력 교류를 가능하게 했으며, 목가공 공장을 만들어 숲 가꾸기 사업을 통해 나오는 목재를 활용하도록 했다. 또 산나물 사업단을 만들어 숲 가꾸기 사업과 연계했다. 마지막으로 인구도 많지 않고 시장규모도 적은 태백의 현실을 감안해 사업을 소규모화하고 다각화했다.

원응호는 이를 바탕으로 자립적 경제공동체 건설, 그리고 지역사회 소기업 육성센터 설립을 목표로 삼았다. 오랜 경험 끝에 자연스레 도출된 결론이었다. 그가 그리는 자립적 경제공동체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자활센터’를 지역 개발 회사로 정착하기 위해서 철저히 ‘지역화’ 전략을 택해야 한다. …나는 ‘지역화’는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바탕으로, 지역 사회의 인적, 물적 기반 위에서 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사업으로 지역이 안고 있는 과제를 함께 풀어가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자활 센터는 그 중심에서 다양한 주체들과 교류하고 협력해 지역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을 활성화하도록 해야 한다. 지역 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사업을 만들고 다양한 계층의 지역 주민이 참여해 일자리를 나누고 자원을 나누는 선순환 구조는 공동체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태백에서 실천하려 했던 자립적 경제공동체의 모습이다. 공동체의 회복이야 말로 자활 지원 사업의 궁극의 목표인 ‘일을 통한 빈곤 극복’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이다.” (163~166쪽)

지역사회 소기업(커뮤니티 비즈니스) 육성과, 이를 통한 자립적 경제공동체 건설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원응호는 이 책 말미에서 그 포부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연대를 얘기한다.

“작지만 한 걸음부터 출발해 나간다면 또 다른 곳에서 같은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고 다시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 서로 힘을 모을 때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과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172쪽) 라고 말이다.

상향과 낙경을 꿈꾸다

상경과 낙향. 우리는 이 말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이 말은 그 자체로 일종의 편견을 내포하고 있다. 그 자체로 서울과 지역을 차별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과 지역은 이분법으로 구분지어 생각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사회는 이러한 이분법이 너무 자연스레 받아들여지고 있다. 서울과 서울 외 지역으로 말이다. 이러한 도식, 불편하지만 사실이다.

서울과 그 외 지역간의 격차는 인구를 포함해 점점 벌어지고 있다. 그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지역을 키우는 것밖에 없다. 그리고 지역을 키우기 위해서는 지역 경제가 살아나야 한다. 사람이 돌아오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요원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난 이 책에서 작은 희망과 대안을 본다. 이러한 활동이 지역민을 중심으로 조금씩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상경과 낙향이란 말이 더 이상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한다. 

언제나 서울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곧 내가 살던 지역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그 길이 낙향이 아니라 상향이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글_ 최을영 (전문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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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을영과 이경희는 언젠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지 못한 철부지 부부이다.
최을영은 전문기고가로 활동하며 월간 인물과사상에 인물포커스를 연재하고 있고,  이경희는 희망제작소 사회창안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글쟁이가 되고 싶은 소망과는 달리 거실에서 TV를 치우지 못한 소심한 부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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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응호님의 집필 후기 '글쓰기도 중요한 지역운동이다'

2009/10/16 11:54 2009/10/16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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